2001년, DMZ를 소재로 한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일로 문산에 있는 통일전망대에 처음 가보게 되었다. 매력적인 장소였다. 멀리 개성이 보이는 그 장소의 높이도 마음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고 북쪽 스피커에서 나는 웅웅거리는 소리들, 마치 손에 잡힐 것처럼 보이는 북쪽의 집들이, 내 마음속에 ‘평화’ 란 말을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닌 현실로 생생하게 각인시켰다. 아니, 바로 저기 보이는 저쪽에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이 현실적 욕망으로 다가왔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여기가 남과 북의 중심지고 연결고리로 존재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양측에서 인정하는 화려한 유머의 장소가 되어야만 했다. 폭발하는 에너지가 짜릿하게 수렴되고 마는……. 그러려면 사람들을 전망대로 끌어들여야 했다. 이곳 무당이 저쪽 무당을 불러내 한바탕 굿을 하도록 한다면 어떨까? 함께 굿판을 즐길 수 있도록 어떻게든 북쪽에서도 보이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통일전망대 위에서 요술피리를 불면 길고 긴 호랑이 꼬리가 하늘에서 춤을추는 작품을 상상했다. 통일전망대 빌딩을 호랑이 몸통으로 하고 그 몸에서 나오는 긴 꼬리가 멀리 북한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빌딩을 에워쌀 호피는 매우 가벼운 재질로 반드시 그 털이 바람에 나부껴야 했다. 그러나 막상 통일전망대의 정확한 크기를 재보니 만만치 않은 규모였다. 높이 25미터, 둘레 28.5미터로 둘레가 높이보다 훨씬 더 길었다. 넓이로 따지니 600m²이 넘는 규모였다. 아뿔싸, 전망대 빌딩을 내가 너무 평면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전망대 4층 이상부터는 군사지역 이어서 군인들의 허가와 협조가 필요했다.
호피 재료로 선택한 것은 죠리퐁 과자 봉지였다. 죠리퐁을 만드는 크라운제과에 물품지원 요청 이메일을 보냈다. 게다가 죠리퐁 과자 봉지를 그대로 쓰면 호피 색깔이 선명하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작가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새 필름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크라운제과로부터 내부에 이견이 있다는 답을 받았다. 봉지 필름을 새롭게 디자인해서 쓰면 과연 그것이 죠리퐁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였다. 기업 입장에서는 타당한 우려였다. 나는 그분들을 설득하느라 여러 번의 메일을 주고받았고 공장에도 찾아갔다. 그리고 결국 내 요청을 들어주는 합의에 도달하게 되었다!

크라운제과 내부에서 합의가 떨어지자 공장에서는 지체 없이 넉넉하게 롤을 만들어주었다. 롤을 받은 뒤에 그것으로 호피를 만들기 위해 일산 옆 장흥동에 있는 으뜸포장이라는 포장공장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나는 포장 작업을 해줄 아주머니들께 작품이 설치될 때 어떻게 보일지 미리 시뮬레이션을 보여주었다. 아주머니들은 신나는 라디오 음악에 맞추어 꼼꼼히 작업했고 시간에 맞추어 일을 마무리해주었다. 작업할 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하나의 작업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이 도와주는지 모른다. 영화 크레디트처럼 한 분 한 분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쉽기만 하다.
“죠리퐁 과자 봉지를 이렇게 접어서 그물망에 묶습니다.”
통일전망대 밑에 쌓아놓은 호피무늬 털 처음에는 이렇게 양 끝면을 잡아당겨 꿰매려고 했으나 중력이 아래로 당기는 힘이 더 세서 실패했다. 천 전체를 다시 내려 옆면을 먼저 꿰매서 전망대에 입히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통일전망대 옥상은 군사지역이다. 열 명 이상의 군인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호피무늬 천을 입히는데 군인들의 도움이 매우 컸다. 다음 사진은 군인들과 함께 큰 소리로 구령을 붙이며 조금씩 있는 힘을 다해 죠리퐁 과자 봉지로 만든 호피를 위에서 끌어당기고 있는 모습이다. 전망대 꼭대기 조그만 점들이 군인들의 머리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에야 설치를 겨우 끝낼 수 있었다. 이 작업은 인사동 육교 설치 작업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이 또한 전체적으로 표범무늬를 뒤집어쓴 어떤 알 수 없는 생물체가 우뚝 서 있는 정경이다.  

홍이현숙이 개입한 전망대는 일반인이 아닌 ‘군인’이 이용하는 전망대로 시선과 관찰 그 자체가 확장된 도구인 곳이다. 즉 여기에서 시선의 주체는 국가기구와 동일시된다. 먼 거리에서 보여지는 남과 북의 전망대는 국가기구의 상징적인 눈임과 동시에 신체이기도 하다. 이런 권력의 시선 작동이 매개되는 전망대 또한 육교처럼 눈여겨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건조물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전망대를 다시 응시의 대상이 되도록 유도해냄으로써 관찰의 공간이 관찰을 당하게 된다. 이런 홍이현숙의 작업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은 이런 시선 – 권력의 장치를 말랑말랑한 육질의 생명체로 전치시킴으로써 보여지지 않았던 시선의 개념, 권력의 개념을 노출시킨다는 점이다. 통일동산은 통일이라는 무겁고 복잡한 정치적 · 경제적 이행과정을 속세화시켜버리는 장소이며 이 속에서 유일하게 남성적 권력기구로 지칭될 수 있는 전망대는 홍이현숙의 예술적 개입을 통해서 유쾌하게 해체되어버린다. ‘딱딱한’ 건조물은 촉각적이고 빛에 반사되는 ‘말랑말랑한’ 생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상상을 넓혀가자면, 이런 홍이현숙의 개입은 남성의 성기에 대한 예술적 거세 혹은 기능의 무력화로 비쳐지기도 한다. 
전민정, 홍이현숙의 작가론 중 발췌,  기전미술 20 artist critic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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