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문화공간 에무’는 지하 2층에 있는데, 그곳 한구석에 창문이 없고 두 평이 채 안 되는 방 하나가
따로 있었다. 그때는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버려진 듯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매력적인 방이었다. 낮은 촉수의 형광등이 하나 달려 있었고 그걸 끄면 완전 암흑이었다. 거기에 있는 물건들을 이리저리 대충 치우고 찬 바닥에 가만히 누워보았다. 한가운데 벽 뒤 어디쯤에서 물이 쫄쫄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물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이럴까? ‘붉은 생리혈 속으로 깊게 잠수한다. 더 깊게 내려간다. 한참 동안 호흡을 길게 참는다. 그리고 솟구쳐 오르듯이 호 하며 숨을 터뜨린다.’ 순간 폐소공포의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그 공포를 조금 더 반복하고 확장하기 위해 거울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 저 너머로 생기는 허상의 공간, 걸어 들어갈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있는 공간, 두 평이 네 평이 되고 16평이 되고 196평이 된다. 무한하게 확장된 공간에서 만나는 수백 개의 나, 공포는 더 이상 없다. 수많은 자아가 입을 벌리고 서 있을 뿐. 그래서 거울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 거울들은 〈폐경의례〉전에 참여했던 언니들과 동네 아줌마들의 낡은 거울들 이다. 각각의 거울이 꼭 주인을 닮아 거울의 모양만 보아도 누구 것인지 알 수 있다. 요즘은 이런 낡고 아름다운 거울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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