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 북한산 서쪽 자락 구기동에 작업실을 얻었다. 이곳에서 한 시간여 정도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승가사’가 있는데, 이 절은 고려시대에 처음 지어 지금의 모습을 갖춘 비구니스님들의 절이다. . 나는 최근에 거의 매일 이 계곡에 오르고 있는데, 오후2시, 태양의 남중 시각에, 해발 434미터의 급격한 경사위에 있는 승가사에 오르면, 갑자기 낮아진 공기압 속에서 볼 수 있는 것들,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 한낮의 시간에 빨래 널은 대웅전 뒷마당을 어슬렁거리거나 절 주변을 배회하는 들개들을 쫓아다니고 산괭이들과 함께 달리며 축지법을 연습하고 죽은 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찬 명부전 내부를 엿보며, 마애불의 화강석 피부를 눈으로 어루만지며, 차츰 그곳에 젖어드는 나의 신체와 그 움직임을 관찰하여 새롭게 감각하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아 오고 있다.
이곳에 일렁이는 해방감과 아이러니, 돌연변이 유전자의 왕성한 활동, 한낮의 뜨거운 태양아래서의 비인간들의 유희, 무한한 용납 안에서의 도발적이고 발작적인 세계, 금기된 공간에서 트로트처럼 신명나는 불경소리, 수상한 숨소리, 그리고 어긋난 존재들, 수평이동과 수직이동의 밸런스 혹은 언밸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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