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세종대왕상이 새로 생겼다. 탁 트인 넓은 광장이면 족할 곳에 뭔가를 꼭 세워야 성이 차는
이들이 있다. 빈 것을 못 견뎌하는 사람들. 광화문네거리에 그런 여백이 있으면, 사람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을 텐데… …. 그래야 그곳이 사람들 각자에게 의미 있는 곳이 되어 모두에게 유연하게 쓰일 텐데… …. 거실이 주방도 되고 침실도 되는 한옥처럼 말이다. 아쉽다! 너무 꽉 찬 도시공간은 숨이 막히게 우리를 옥죈다. 보이지 않는 것과 일어날 수 있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공간을 비워놓을 수는 없을까? 완벽한 풍경이란 없다. 풍경은 늘 움직인다. 움직이는 풍경에는 틈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그 틈으로 들어갔다 나온다. 그 틈이 있기에 우리는 또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다.
광화문에서 길을 잃다
작가 홍이현숙은 영상 작업을 통해 우리가 늘 보아오던 광화문 주위 풍경에 이질적인 존재를 심어놓았다. 옷도 행동도 비범치 않은 이 여성의 존재에게 우리는 어느덧 눈길을 보내게 되고, 다음 장면이 이어질수록 그 공간보다 여성의 등장에 더 주목하게 된다. 이로써 단일한 일면으로서의 풍경은 본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다층적 공간이었음을 깨닫게 되며, 특정하게 공적 표상으로 덧입혀진 관습을 깨고 새롭게 들어갈 입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공간 속에서 우리의 갈 길을 잃고 마는 불행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놓은 길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창조적 오인, 그리하여 새로운 용법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길을 내는 모색의 시도라고 나는 이해하고 싶다. 길을 잃고 엉뚱한 길을 가는 것, 그래서 뜻하지 않은 길을 가고 뜻하지 않은 공간을 창조하는 것 . 전시를 본 이들이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 동시대의 역사를 고민하게 된다면, 나아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며 건설 중인 고층빌딩 사이를 걸으며 도시와 삶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시작된다면, 이 전시의 성과는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전시에 담긴 ‘길을 잃는다’라는 행위는 갈 곳을 잃은 현 상황에 대한 토로가 아니라, 더 많은 길을 모색하기 위해 방황을 택한 이들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김정아(미술 평론), [광화문에서 길을 잃다] 도록에서 발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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